일기

탈상

원증 2020. 6. 4. 00:51

분지는 소리의 감옥이다

벌레가 그스슷 울고

묘지떼가 무늬처럼 어지럽게 돋아난 산 위로 군용헬기가 쇳소리를 토해냈다

흐느낌은 묻혀 가라앉고

봉분에 꽂힌 담배 한 개비는 빠르게 타들어갔다

생전 당신께서는 서체를 쓰셨다

당신 필적과 똑 닮은 글자가 비석에 긁혔다

당신 아들의 손목에선 염주가 덜그럭거린다

당신 마른 가슴 위 두 번 감겨있던 기다란 염주는 당신의 늙은 손에서 수천번을 맴돌았다

 

당신은 낮잠을 자다 내 손을 힘 줘 잡았다

먼 사람이 가까워 보였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모두 당신이

그 누구의 손을 잡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었기를 바란다

사자의 이름이 적힌 부처가 빼곡히 앉았다

발 밑에서 두 손을 모은 이들을 쳐다보지 않는다

풍등이 떨며 울었다

 

헬기는 영원히 분지를 맴돈다

인부들은 영원히 도로를 깨부순다

 

당신의 인기척이 없어도

분지는 소리의 감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