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이영도 작가의 『카이와판돔의 번역에 관하여』- 번역과 SF

원증 2020. 4. 5. 16:00

The Expanse 의 랑 벨타 (벨터어). 소행성대의 인간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이 TV 시리즈에서 소행성대인(=벨터)는 2등 시민처럼 여겨진다. "mama sabaka" 는 대강 욕으로 "Ah, motherfucker." 정도의 느낌이다. 러시아어 '개'에서 왔다. 

 

 이영도 작가의 『카이와판돔의 번역에 관하여』는 카이와판돔이 무엇인지 의문을 가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자의 이름인가? 지역의 이름인가? SF의 세계에서 이토록 번역을 유려하게 다룬 작품은 한 번도 읽지 못했다. 외계의 언어가 재앙을 유발하고 번역가는 지구주의자들의 타겟이 된다. 박중위가 카이와판돔의 의미를 알고 웃는 까닭도 섬세한 문화와 관계의 문맥 안에 존재한다. 의미는 스포일러이므로 생략하도록 한다. 

 

 통번역 알바를 수십번 뛰고 번역학서를 검수하며 언제나 "번역은 반역이다 (Traduttore, traditore)"이라는 말을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다. 카카오톡을 왓츠앱으로 번역하는 것. "Good afternoon!" 을 "안녕!"으로 번역하는 것. 육개장을 "Korean meat stew" 로 번역하는 것... 이 외에도 수많은 반역이 번역계를 돌아다닌다. 이것을 반역이라고 여긴다면. 

 우습게도 "번역은 반역이다" 라는 말은 도저히 반역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원어(번역학에서는 ST- Source Text)의 운율이 그대로 살아있고 의미가 변질되지도 않았다. 유진 나이다는 번역이 "원작의 정신과 태도를 전달해야 한다" 라고 여겼는데, 이 번역에선 정말 '정신(spirit)' 이 완벽히 전달된 것만 같다.

 

 번역학에서는 유명한 설화가 하나 있다. 한 미국 선교사가 에스키모인들을 전도하러 영어 성경을 이누이트어로 번역하는데, "하나님의 양(Lamb of God)"를 말 그대로 직역한다면 양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에스키모인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할 터였다. 그래서 선교사는 이를 "하나님의 물개(Seal of God)"라고 번역했다. 이들에세 물개는 연약하고 순한 동물로 인식되기 때문에 원문의 의미가 잘 전달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번역은 반역인가? 

 

 스타트렉의 우후라가 유창한 클링온어를 사용할 때 편안히 자막이 덧입혀지는 것처럼, SF는 언어를 창작하면서도 그 반역의 과정을 완벽히 무시하곤 했다. 사람들은 클링온어와 (SF는 아니지만) 엘프어에 매료되지만 그 세계에 통번역은 없다. 어쩐지 유창히 클링온어나 엘프어(=외계어)를 하는 내국인(=지구인)이 있을 뿐이다. 

 

 언젠가 비지니스 미팅에 통역사로 참여한 적이 있다. 한국기업과 일본기업이었고 나는 일본어로 인사를 하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다만 한국기업이 준비한 내용은 꽤나 공격적이었다. "계약을 하자고 해놓고 갑자기 멋대로 파기하다니 다시는 우리 정보를 쓰지 못 하게 해주겠다" 정도의 내용이었다. 그 내용을 읽자 일본인들은 아주 당황한 모습이었다. 알고보니 서로가 영어에 서툴었기 때문에 나온 오류였다.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계약서의 제목을 바꾸자, 우리에게 이 제목은 상부에 보고할 때 문제가 된다" 라는 내용이 "이 계약서를 파기하자" 가 된 것이다. 계약서의 제목이 애로사항이 된다는 일은 한국인들에게 꽤나 이상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 문맥은 무시되고 중요하지 않았던 단어들이 부각되며 생긴 오해였다. 일본인들도 한국기업이 보낸 답장의 공격성에 놀라 급히 한국으로 온 터였다. 모두가 "오해네요!" 하고 웃으며 끝난 일이었지만, 아마 내가 그 자리에서 오해를 고쳐주지 않았다면 아마 두 회사의 계약은 정말 파기가 되고 법정소송까지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SF에서 이런 일은 거의 없다. 모두가 서로를 향해 폭탄을 쏘고 선을 넘은 악역을 무찌르지만 "도구"가 "무기"로 번역된 탓에 사람이 죽는 일은 없다. SF는 수많은 단어를 창작하고 가상의 기술에 신묘한 이름을 붙이지만 정작 언어의 파괴력은 천대받는다. 번역의 오류는 오늘도 사람 몇을 죽였을 것이다.